자유게시판 심재상 / 리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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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들이 마커 제 친구들입니다. ♡♤
-- 자네들은 어데 나완?
-- 강고 나왔습니다.
-- 초당 솔밭 안에 있는 핵교?
-- 아닙니다.
-- 그러믄 노암동 그 꼬댕이에 있던 핵교 댕겼구만?
-- 그것두 아니구요... 용강동에 있던 학교 기억나십니까?
-- 엥? 용강동 군번이란 말이지? 요것 봐라, 자네들 졸업한
지 을매나 됐는데?
-- 올해로 딱 삼십년입니다.
-- 삼십년! 야들이 지금 삶은 호박 이도 안 들어갈 소리 하고
앉아있구만. 느들이 졸업한 지 벌써 삼십년이라고? 허,
이제 보니 완전히 중늙은이들이구만, 이거.
정말 삶은 호박 이도 안 들어갈 소리지만
빠른 물살에 떠밀리고 느린 물살에 실려
작은 구비 큰 구비 서른 구비를 돌아나오니
어느덧 오십 고개
저기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더 많은 점잖은
신사나 그 곁에 의기양양하게 앉아있는 검은 머리 양아치나
(그 놈은 염색한 게 분명하다니까요)
오십보 백보 다 내 불알 친구들입니다.
2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도시락 다 까먹고 점심 시간이면
숟가락 하나로 온 교실을 누비며 애꿎은 남의 도시락 줄줄이
거덜내던 먹새들입니다.
토요일 오후마다 피 튀기는 반대항 축구,
짜장면 한 그릇에 전 재산을 걸고 손목시계를 걸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던 막무가내 무대뽀들입니다.
점심도 굶은 채 전후반 90분 연장전 30분 처절한
육탄전으로도 승부가 안 나면 야야, 승부차기는
무슨 승부차기, 다시 연장전 10분씩만 더 하자고
빡빡 우기던 꼴통들입니다. 그렇게 펄펄 날다가도
오후 수업시간엔 이눔의 자슥들, 얼음깡판에 나가자빠진
황소눈깔 마냥 게슴츠레해 가지고
불호령이 떨어지건 말건 눈도 깜짝 않던 만고강산들입니다
1번 빵점, 2번 빵점, 3번 빵점, 4번 5점, 오점도 빵점과
마찬가지!
근엄한 모욕을 낄낄 웃는 명예로 홀라당 뒤집을 줄도 알았던
광대들입니다.
학생 여러분, 제발 월장하지 마세요,
월담하면 안됩니다, 요렇게 뒷짐 지은 馬頭禪師
조회때마다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통사정도 해보고
으름장도 놓아보시다가 등교시간 점심시간마다 만만한
땅개 上座에게 담밑에서 잠복근무를 서게 했을 때
강호에 파다했던 이야기---가방 하나가 날아들고,
뒤이어 몸뚱이 하나가 날아들더니 안녕하세요?
가방을 들고 나비처럼 도로 넘어가버린 싸가지 없는
자슥이 있었다는군요. 닭쫒던 개꼴이 된 불쌍한 땅개
상좌, 그 분이 학교 뒷담벽에 온통 똥칠갑을 해버린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 여름날 그를 돌아버리게 만든 건
바로 저놈들,저어기 시침 뚝 떼고 앉아있는 저 미친
놈들입니다. 싸그리 마커 제 친구들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당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
한없이 너그러운 손길로
이제 저희 모두를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되돌려주시고
오늘밤 동네 강아지들처럼 함께 짖어대고 킬킬대며
희희낙락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저희 모두의 복이 터졌나이다. 이 복됨,
이 끗발이 영원케 하소서, 아멘.
◈ 심재상(시인, 관동대 교수)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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