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한마당

강릉고등학교 총동문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7회 동기회

자유게시판 어느 죽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17기 김대준
댓글 0건 조회 503회 작성일 10-11-23 23:13

본문

좀 어두운 글이지만 심금을 울리는 글이라 퍼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주말이라 산에 오른다. 사각거리는 낙엽 소리도 투명한 하늘빛도 오늘은 그저 그렇다. 머릿속은 온통 스치듯 본 짧은 기사 몇 줄로 그득하다. 터질 것 같다.

때 늦은 가을 야산이다. 한 사내가 느리지만 단호하게 구덩이를 파고 주변의 낙엽을 정리한다. 불똥이 튀어 산불이 날까 걱정이 되는 건지 아님 이승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끌고 싶었는지 헷갈렸다. 정리는 길었다. 마침내 사내는 구덩이로 기어들어 낙엽을 관처럼 덮는다. 얼핏 하늘을 본다. 지랄 맞게 투명한 하늘이다. 눈이 부셔 더 이상 뜨고 있을 수도 없다. 그리곤 낙엽에 불을 붙여 자신을 태운다.

“늦가을 낙엽보다 버석거렸을 그 사내의 얼굴엔 눈물이 흘렀을까? 미소가 흘렀을까? “
“그는 자살을 한 걸까? 분신을 한 걸까?”

이 같잖은 의문이 선승의 화두마냥 산행 내내 나를 괴롭힌다. 만약 그 사내가 쓴 유서의 한 구절만 읽지 않았다면 어쩌면 난 그 사내의 죽음을 아름답게 기억하며 금방 잊을 수도 있었다. 혹 나도 그렇게 갈 수 있기를 소망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구절을 남긴 사내와 이 시대가 원망스럽다.

“이 방법을 택한 것은 내가 누군지 밝혀지면 장례를 치러야 하고 그러면 아들에게 또 빚이 되는 게 아니냐? 시간제 일을 하는 아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했으면 한다”

이 구절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이건 사내가 내게 던지는 비수다. 사내의 죽음은 이미 격렬한 분신이다. 이 세상이 이렇게 지옥임을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분노의 함성이다. 분신의 시대에 시선조차 받지 못한 가엾은 아우성이다.

책임, 분투, 열심, 노력, 최선, 비겁이란 단어로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마라. 그는 다만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뿐이다. 늦가을의 섬뜩했을 구덩이로 스스로 기어들어 그 뜨거웠을 불로 자신을 태우도록 강요한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라면 그 어디가 지옥일까?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고 말하지도 마라. 장례비가 없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이 세상이 바로 저승이고 지옥이다. 분명 이 지옥은 우리가 만들었다. 지옥을 만든 자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는 나뭇잎으로 자신을 태웠으나 우리는 배금주의(주의란 말로 포장하는 것도 위선이다) 아니 물질만능의 광기로 스스로를 불 태우며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노의 한 사내가 그저 그렇게 스러졌다. 무심한 가을도 그저 그렇게 간다. TV 속에선 어김없이 노래가 흐른다.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